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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렌스 애니웨이 (트랜스젠더, 사랑과 정체성, 사회의 시선, 자아 실현, 퀴어 영화)

by 날아라 땡글이 2025. 5.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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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렌스 애니웨이(Laurence Anyways)』는 젊은 감독 자비에 돌란(Xavier Dolan)의 대표작 중 하나로, 사랑과 젠더 정체성의 문제를 예술적 감수성과 섬세한 영상미로 풀어낸 퀴어 드라마다. 이 영화는 트랜스젠더 여성 로렌스와 그녀의 연인 프레드의 10년에 걸친 사랑과 이별의 여정을 따라가며, 사회가 규정한 '남성'이라는 정체성에서 벗어나 진짜 자신이 되기를 택한 한 인간의 선택과 고통, 사랑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두 사람의 갈등을 그린다. 화려한 미장센, 감각적인 음악, 시적 연출은 물론이고, 사회적 편견, 젠더 규범, 사랑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이 영화는 단순한 퀴어 영화가 아닌 인간 존재에 대한 보편적 드라마로 평가받는다.

이야기의 출발 – 나는 여자예요

로렌스는 1980~90년대 몬트리올에서 고등학교 문학 교사로 일하고 있으며, 지성과 카리스마를 갖춘 남성으로 살아간다. 하지만 그는 늘 속으로 고민해왔던 자신의 진짜 정체성을 더 이상 감출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연인 프레드에게 커밍아웃한다. “나, 사실 여자로 살고 싶어.”

이 고백은 단순한 관계의 갈등이 아니라, 두 사람 모두에게 세계를 송두리째 바꾸는 사건이 된다. 프레드는 당황하지만 떠나지 않기로 하고, 로렌스의 여정에 동참한다. 하지만 사회의 시선은 냉혹하고, 로렌스는 직장을 잃고, 길거리에서 폭행을 당하며, 가족과도 멀어진다. 프레드 역시 “여성을 사랑하던 여성”으로서 주변의 낙인을 견뎌야 하고, 자신이 누구를 사랑하고 있는지조차 혼란스러워진다. 이 영화는 단순히 트랜스젠더의 이야기가 아니라, 사랑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타인의 정체성을 어디까지 수용할 수 있는가라는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트랜스젠더, 그리고 사회의 폭력

‘로렌스 애니웨이’가 특별한 이유는 로렌스의 트랜지션(성별 전환)을 단순히 외적 변화나 극적인 고백의 순간으로 소비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영화는 로렌스가 여성이 되어가는 과정을 고통스럽고 끊임없이 위협받는 일상으로 그려낸다.

교사로서 학생과 학부모로부터 조롱을 당하고, 거리에선 트랜스포비아적 폭언과 폭력을 겪으며, 가족조차도 그의 선택을 인정하지 않는다. 특히 로렌스의 어머니는 아들의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외면한다. 이 모든 상황은 트랜스젠더가 겪는 사회적 폭력의 실상을 예술적으로 포장하지 않고 정면으로 응시한다.

동시에 영화는 로렌스를 불쌍하거나 피해자처럼 그리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분노하고, 고집스럽고, 섬세하며, 유머감각이 있는 인간으로 입체적으로 그려진다. 로렌스는 타인의 시선에 상처받지만, 동시에 자신만의 아름다움을 창조하려는 강한 욕망과 자존을 잃지 않는다.

프레드 – 사랑이라는 감옥과 해방

영화의 또 다른 중심은 로렌스의 연인 프레드다. 프레드는 영화 초반 로렌스의 커밍아웃에도 곁을 지키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의 정체성도 흔들리는 감정의 소용돌이에 휩싸인다.

프레드는 로렌스를 사랑한다. 하지만 이제 로렌스는 ‘남성’이 아닌 ‘여성’으로 살아가고 있고, 프레드는 세상이 이 관계를 비정상으로 규정하는 현실 앞에서 점점 지치고 분노하게 된다. 프레드는 사랑을 위해 희생하고 싶지만, 자기 자신을 잃어가는 느낌에 괴로워한다.

감독 자비에 돌란은 이 캐릭터를 통해 사랑이란 무조건적인 수용이 아니라, 때로는 상대를 사랑하면서도 자신을 지키기 위해 이별해야 하는 아이러니한 감정을 그린다. 프레드는 끝내 로렌스를 떠나고, 각자의 길을 간다. 하지만 영화는 그들의 사랑이 실패했다거나 잘못된 선택이었다고 규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그들이 각자의 진실을 향해 나아간 용기 있는 선택이었다.

시대, 공간, 젠더 – 경계의 미학

‘로렌스 애니웨이’는 시간과 공간, 성별과 정체성의 경계를 끊임없이 흔들고 넘나드는 영화다. 배경은 1989년부터 1999년까지의 캐나다 몬트리올. 하지만 영화는 고의적으로 시대적 단서들을 혼합한다. 복고풍 의상과 90년대 음악, 아방가르드한 연출과 몽환적인 장면들은 시간의 일관성을 해체하면서, 인물의 내면과 정체성의 복잡성을 시각화한다.

예를 들어 로렌스가 여자로 변장하고 첫 외출을 하던 장면, 그녀는 주황색 하늘과 슬로우모션의 꽃잎 속에서 거리를 걷는다. 이는 현실의 위험과 환상 사이를 오가는 ‘존재의 이질감과 열망’을 시각적으로 형상화한 장면이다.

감독은 또한 성별 이분법을 극복하려는 시도를 영화 전체에 녹인다. 여성적이지만 남성적인 캐릭터, 남성적이지만 섬세한 인물들, 여성적인 옷차림을 한 남성 교사 등은 기존의 성 고정관념을 전복시키며 관객에게 젠더의 경계를 재고하게 한다.

시네마토그래피와 음악 – 감정의 시각화

‘로렌스 애니웨이’는 감정이 넘실대는 영상미로도 유명하다. 자비에 돌란 감독은 미술, 의상, 컬러톤, 프레임 구성까지 디테일하게 연출하며, 한 장면 한 장면을 감성의 정점으로 끌어올린다.

특히 슬로우모션과 오버사이즈 샷, 색채 대비가 극명한 의상 연출 등은 로렌스와 프레드의 감정선을 시각적으로 증폭시키는 장치다. 예를 들어, 비오는 날 로렌스가 문을 닫고 사라지는 장면, 클럽에서 프레드가 무대로 뛰어드는 순간, 이 모든 장면은 현실이 아니라 감정이 확장된 꿈의 공간처럼 그려진다.

음악 또한 감정과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다. 데페쉬 모드, 뷔욕, 다프트 펑크 등 1980~90년대 유럽 음악은 영화의 분위기와 절묘하게 어우러지며, 감정의 리듬을 이끌어내는 내레이션 역할을 한다.

사랑이란 무엇인가 – 관계의 재정의

‘로렌스 애니웨이’는 단지 트랜스젠더 정체성을 다룬 영화가 아니다. 이 영화는 본질적으로 사랑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프레드는 로렌스를 사랑한다. 하지만 로렌스가 여성이 된 후에도 같은 방식으로 사랑할 수 있을까? 로렌스는 프레드를 사랑하지만, 프레드가 자신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그것은 누구의 잘못인가?

이 영화는 "진짜 사랑이라면 조건 없이 모든 것을 수용할 수 있는가?"라는 로맨틱한 환상을 비판한다. 오히려 사랑은 언제나 갈등, 재정의, 해체와 재구성의 연속 과정임을 보여준다. 로렌스와 프레드는 이별하지만, 그들의 사랑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들은 서로를 기억하며, 각자의 방식으로 사랑을 완성시킨다. 영화는 그래서 슬프지만, 동시에 해방의 영화다.

트랜스젠더의 이야기를 넘어, 사랑과 정체성, 사회적 편견에 대한 깊은 통찰을 제공한다. 특히, 로렌스와 프레드의 관게를 통하여 사랑과 복잡성과 인간 관계의 어려움을 섬세하게 표현하였다.

자비에 돌란 – 젊은 거장의 시선

감독 자비에 돌란은 이 영화를 20대 중반에 연출했다. 놀라운 감수성과 성숙한 주제의식, 형식적 실험 정신으로 인해 그는 퀴어 영화계뿐 아니라 유럽 예술영화계에서도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게 된다.

그는 ‘로렌스 애니웨이’에서 단지 트랜스젠더 이슈를 드러내는 데 그치지 않고, 시네마를 통한 젠더, 사랑, 인간 존재의 탐구를 본격화한다. 이 영화는 자비에 돌란의 대표작일 뿐 아니라, 퀴어 영화의 새로운 경향을 상징하는 작품으로 평가된다.

결론 – 나를 사랑해, 어떤 나라도

‘로렌스 애니웨이’는 단순한 정체성 영화가 아니다. 이 영화는 우리에게 묻는다.

“너는 누군가를 사랑할 때, 그 사람이 변해도 계속 사랑할 수 있겠는가?” “네가 사랑한 모습이 사라졌을 때, 그 사람의 본질까지 사랑한 것이었는가?”

로렌스는 여자가 되었고, 프레드는 떠났다. 하지만 사랑은 존재했고, 상처는 깊이 남았다. 이 영화는 사랑의 조건을 벗어나 진정한 자아로 살아가려는 사람들의 외롭고 고귀한 투쟁을 그린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트랜스젠더의 이야기이자,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이 영화는 트랜스젠더 여성과 그녀의 연인 사이의 복잡한 감정과 사랑을 섬세하게 그려낸 작품으로서, 자비에 돌란 감독의 독특한 연출과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가 돋보인다. 사랑과 정체성에 대한 깊은 통찰을 워하는 관개들에게 추천하는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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