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더랜드(2024)’는 김태용 감독이 연출하고 탕웨이, 배수지, 박보검, 정유미, 최우식 등 초호화 배우들이 출연한 한국형 SF 휴먼 드라마이다. 이 영화는 죽은 사람 혹은 의식이 없는 사랑하는 이를 인공지능(AI)을 통해 복원해주는 가상현실 플랫폼 ‘원더랜드’를 배경으로, 상실과 그리움, 치유와 윤리적 딜레마를 교차시킨다. 외형상 SF 장르를 띠지만, 실제로는 가장 인간적인 감정인 ‘그리움’과 ‘관계’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특히 영화는 죽음을 ‘종결’이 아닌 ‘연결’로 해석하며, 디지털 시대에 다시금 ‘인간다움’의 본질을 되묻는 섬세한 드라마로 완성되었다. 본 글에서는 ‘원더랜드’가 제기하는 서사적 핵심, 기술의 윤리, 인간 감정의 복잡성을 중심으로 작품을 분석한다.
1. ‘원더랜드’ 시스템: 죽음을 복제하는 플랫폼의 사회적 상상력
‘원더랜드’는 상실의 고통을 기술로 완화시키려는 디지털 애도 플랫폼이다. 죽은 사람이나 의식이 없는 가족, 연인을 디지털 데이터 기반으로 재현해주는 이 서비스는, 단순한 화상채팅이 아닌 가상현실 속 인물과의 ‘재회’를 가능하게 한다. 생전의 영상, 음성, SNS 데이터, 메신저 대화, 사진 등을 학습한 AI는 실제와 거의 흡사한 복제체를 만들고, 사용자는 이 가상공간에서 그들과 다시 살아있는 듯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영화는 이 설정을 통해 디지털 기술이 개인의 정서, 특히 ‘애도’라는 감정의 방식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지를 탐색한다. 이 영화에서 가상현실은 단지 놀이나 게임의 공간이 아니다. 그것은 슬픔을 지연시키는 장치이자, 정서를 관리하는 개인화된 ‘사적 공간’이며, 애도 과정을 사회적으로 재구성하는 신기술이다.
이러한 상상력은 결코 허구만이 아니다. 실제로 2020년 국내에서 방송된 다큐멘터리 <너를 만났다>에서는 VR 기술을 통해 세상을 떠난 딸과 다시 만나는 어머니의 모습이 방영되어 엄청난 반향을 일으킨 바 있다. 이처럼 ‘원더랜드’는 이미 우리 사회가 경험하고 있는 감정과 기술의 교차점을 예술적으로 확장한 사례다.
2. 다양한 서사 구조: 각기 다른 관계의 복원과 이별의 방식
‘원더랜드’는 단일한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지 않다. 이 영화는 여러 커플과 가족의 서사를 병렬로 전개한다.
- 수지-박보검 커플: 박보검은 식물인간 상태의 연인으로 등장하고, 수지는 AI로 구현된 그의 가상 캐릭터를 통해 관계를 유지하고자 한다. 이는 살아있지만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의 이별과 회복, 죄책감과 위안 사이의 모호한 감정을 다룬다.
- 탕웨이-공유 커플: 탕웨이는 남편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원더랜드’ 시스템을 통해 다시 그와 마주하려 한다. 그러나 그는 점차 가상공간이 현실을 대체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 정유미-최우식 조합: 두 배우는 ‘원더랜드’ 관리자 역할을 맡아 사용자들이 적절한 시점에 시스템을 종료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조력자이자 감시자의 입장에 선다. 그들의 이야기는 기술과 감정의 경계에서 어떻게 윤리를 설정할 것인가에 관한 메타 서사이다.
이처럼 영화는 죽음이라는 공통된 상황 속에서도 각 인물의 상실을 각기 다르게 그려냄으로써, 인간이 관계를 어떻게 해석하고, 기술을 통해 감정을 어떻게 재조립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관객은 다양한 인물의 감정 여정을 따라가며 각자의 상실 경험을 투사하게 된다.
3. 복제된 감정: 진짜 감정은 어디까지가 진짜인가?
‘원더랜드’는 중요한 윤리적, 존재론적 질문을 던진다. AI가 복원한 인격체가 실제 감정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실제와 너무 유사할 경우, 사용자는 스스로 감정이입하고 정서적 유대를 다시 형성하게 된다. 이 지점에서 영화는 진짜 감정이란 무엇이며, 감정의 진정성은 상대방의 실재 여부에 의존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영화는 AI가 생성한 인격체가 사용자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면, 그것이 ‘가짜’라고만 할 수 있는가라는 딜레마를 제시한다. 실제로 많은 사용자가 애완로봇, 감정형 AI, 챗봇 등과 관계를 맺으며 심리적 위안을 받고 있다. 그렇다면 감정의 실체는 물리적 존재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상호작용과 기억의 연결 속에서 발생하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영화는 감정의 진정성만이 아니라, 그로 인해 발생하는 윤리적 책임도 함께 묻는다. 특히 ‘원더랜드’ 사용 종료 시점에 대한 논의는, 언제 감정을 접어야 하는가, 언제 애도를 끝내야 하는가에 대한 철학적 고민으로 이어진다. 인물들은 가상현실에서 위안을 얻지만, 결국 진짜 회복은 현실 세계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기술 찬양보다는 기술 속 인간성의 윤리를 말하고자 한다.
4. 기술과 존재의 미래: 디지털 불멸인가, 감정의 재활용인가?
디지털 기술이 인간 존재를 복제하거나 저장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는 오래전부터 SF 장르에서 다뤄져 왔다. 하지만 ‘원더랜드’는 단지 기술의 스펙터클이나 미래 기술의 전망에 몰입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 영화는 기술이 가져올 정서적 영향, 개인의 자아 정체성과 애도의 방식에 집중한다.
만약 죽은 사람의 목소리, 표정, 말투를 완벽하게 복제할 수 있다면 우리는 그 사람을 잊을 수 있을까? 영화는 이 기술이 주는 위안을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그것이 슬픔을 덜어주기보다는 감정을 반복하게 만들 위험이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감정은 기억을 통해 반복되고, 기술은 이 반복을 중단시키지 않는다. 오히려 끝나야 할 감정을 무기한 연장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메시지는 결국 인간 존재의 유한성과 감정의 비완전성을 수용하자는 제안으로 이어진다. 원더랜드는 감정을 ‘대체’하는 공간이 아니라, 감정을 ‘확장’시키는 기술이다. 그리고 그 확장은 때로 치유가 아니라 고통의 연장이 될 수도 있음을 영화는 경고한다.
결론: 원더랜드는 우리가 만든 또 하나의 감정 세계
‘원더랜드’는 기술과 감정, 현실과 가상, 죽음과 삶의 경계에서 끊임없이 고민하는 영화다. 이 영화는 감정을 복제하고 싶은 인간의 욕망, 사랑을 끝내고 싶지 않은 마음, 기술에 기대려는 시대적 정서를 섬세하게 포착한다.
단순한 SF를 넘어, 이 영화는 현대인의 정서적 풍경을 그린다. SNS, AI, 메타버스가 일상이 된 오늘날, 우리는 얼마나 자주 진짜 관계보다 ‘기억 속 관계’에 의존하는가? ‘원더랜드’는 그런 우리에게 묻는다. 기억이 진짜보다 더 진짜처럼 느껴질 때, 우리는 어떤 감정을 믿어야 하는가?
영화는 분명히 말한다. 감정은 복제될 수 있지만, 삶은 그렇지 않다. 진짜 위로는 가상공간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그 깨달음은 ‘이별을 끝내고, 다시 살아가는 것’에서 시작된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을 AI(인공지능) 기술로 치유하려는 시도를 그렸으며, 기술이 인간의 감정을 완전히 대체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결국, 영화는 현실의 상실과 슬픔을 받아들이는 것이 진정한 치유의 시작인것을 강조하며, 인간은 감정과 기술의 조화로운 공존에 대해 메세지를 전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