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개봉한 영화 ‘줄리 & 줄리아(Julie & Julia)’는 미국 요리 역사상 전설적인 인물인 줄리아 차일드(Julia Child)와 그녀의 요리책을 따라 블로그 프로젝트를 진행한 줄리 파웰(Julie Powell)의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다. 노라 에프론 감독의 섬세하고 따뜻한 연출 아래, 두 여성의 인생은 시간과 공간을 넘어 평행하게 전개되며, 요리를 매개로 자아를 찾아가는 여정이 펼쳐진다. 이 영화는 단순히 ‘요리하는 여성’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삶에 지치고 방황하던 평범한 여성이 ‘무엇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을 진정성 있게 그려낸 성장 서사이자 여성 서사의 대표작이다.
영화 개요 및 실화의 힘
영화는 1950년대 프랑스 파리에서 시작된다. 남편을 따라 파리에 온 외교관 부인 줄리아 차일드(메릴 스트립 분)는 처음엔 목적 없이 살다가 요리에 흥미를 느끼고, 르 코르동 블루(Cordon Bleu) 요리학교에 입학한다. 그리고 요리를 사랑하는 열정으로 미국 최초의 본격적인 프랑스 요리책을 집필하게 된다.
한편, 2000년대 초 뉴욕 퀸즈에서 전화상담원으로 일하는 줄리 파웰(에이미 아담스 분)은 일과 인간관계, 모든 것에서 지쳐 있던 중 ‘줄리아 차일드의 요리책을 1년간 따라 하며 블로그를 운영하겠다’는 도전적인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이 작품은 두 사람 모두 실존 인물이며, 줄리 파웰의 블로그가 실제로 출판 계약으로 이어지고 베스트셀러가 되었다는 점에서 실화로서의 몰입과 감동이 더해진다.
줄리 & 줄리아는 두명의 실존 인물인 줄리아 차일드와 줄리 파웰의 이야기이다. 이 두 사람의 이야기를 교차 편집하여 전개하는 영화로 관객들에게 다양한 감동과 영감을 주었다.
병렬 서사 – 두 여성, 하나의 여정
영화의 가장 큰 구조적 특징은 두 시대, 두 여성을 병렬적으로 배치한 내러티브다. 줄리아 차일드의 프랑스 시절과 줄리 파웰의 뉴욕 생활은 공간도 시간도 다르지만, ‘정체성을 찾아가는 여정’이라는 공통의 축을 중심으로 묶인다.
줄리아는 주부 이상의 삶을 꿈꾸며 도전하고, 줄리는 일상의 무기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두 사람 모두 자신을 믿지 못하고 좌절하지만, 요리를 통해 세상과 자신을 다시 연결한다. 영화는 이 두 여정을 나란히 배치해, ‘삶을 전환시키는 용기’는 시대를 초월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특히, 줄리가 요리 중 실수를 하거나 블로그 댓글에 상처받는 장면 다음에, 줄리아가 요리 시험에서 실수하고 다시 일어서는 장면이 등장하며, 마치 세대를 뛰어넘은 응원과 멘토링이 오가는 듯한 구조를 만든다.
요리를 통해 자아를 재발견하다
‘줄리 & 줄리아’에서 요리는 단순한 음식 행위가 아니다. 자아 회복의 도구이자 자기 표현의 수단이다. 줄리는 하루하루 요리책의 레시피를 따라 하며, 조리법이라는 명확한 목표를 통해 삶의 통제감을 되찾고, 점차 삶의 주도권을 갖는다.
줄리아에게 요리는 ‘미국 여성도 정통 프랑스 요리를 배울 수 있다’는 증명이었다. 그 당시에 여성은 전문가로 인정받기 힘들었지만, 그녀는 자신의 언어로 요리법을 정리하고, 복잡한 프랑스 요리를 친근한 미국식 스타일로 재해석해 여성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했다. 영화 속 다양한 프랑스의 요리 장면은 관갣르에게 시각적인 즐거움과 요리를 통한 힐링과 위로를 느끼게 해준다.
두 여성 모두 요리를 통해 “나는 이것을 할 수 있다”는 확신을 얻고, 그것은 곧 ‘나는 어떤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존재의 긍정으로 이어진다. 이 영화에서 요리는 곧 자기 정의의 도구다.
여성, 사회, 정체성 – 존재의 위치를 찾아서
영화가 강렬한 메시지를 가지는 이유는, 이 모든 여정이 여성의 삶 속에서 펼쳐진다는 점이다. 줄리아 차일드는 1950년대의 보수적 가부장 사회에서 ‘취미’로 간주된 요리를 직업으로, 학문으로 끌어올렸다. 그녀는 나이가 많고, 키도 크고, 발음도 어색했지만, 자신의 열정을 믿었다.
줄리 역시 뉴욕이라는 도시에서 무기력한 직장인, 평범한 아내, 실패한 작가라는 정체성에 갇혀 있었다. 하지만 줄리아의 책을 통해 그녀는 처음으로 ‘나도 할 수 있다’는 감정을 얻는다. 이들은 모두 사회가 부여한 역할을 넘어, 스스로 삶의 이름표를 다시 쓰려는 여성들이었다.
특히 줄리가 요리의 성공보다 자신이 기록하고 있다는 사실에 집착하는 장면은, 여성의 존재가 얼마나 쉽게 가려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블로그는 그녀에게 단순한 홍보 수단이 아니라, 존재 확인의 창구였다.
블로그와 디지털 문화 – 연결의 시대
줄리의 프로젝트는 블로그를 통해 세상과 연결된다. 처음에는 조회 수도 없고 댓글도 없지만, 시간이 지나며 독자들이 생기고, 요리법에 대해 함께 이야기 나누는 온라인 커뮤니티가 만들어진다. 이는 영화가 디지털 문화 속에서 개인이 어떻게 자기 목소리를 내고,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장면이다.
블로그는 줄리에게 ‘감정의 쓰레기통’이 아니라, 삶의 기록이자 자기 실현의 공간이다. 이 점에서 ‘줄리 & 줄리아’는 초기 블로그 문화의 가능성과 힘을 보여주는 영화로도 읽힌다. 특히 여성 주체가 온라인에서 목소리를 내고 영향력을 얻는 구조는 이후 유튜브, SNS 문화까지 연결되는 흐름의 선구자적 장면이다.
관계와 지지 – 사랑이 주는 힘
두 여성 모두 남편의 사랑과 지지 속에서 성장을 이룬다. 줄리아의 남편 폴 차일드(스탠리 투치 분)는 늘 그녀의 선택을 존중하며, 진심으로 응원한다. 그의 존재는 그 시대에는 드물게, 자율성과 존엄을 보장하는 이상적 파트너로 그려진다.
줄리의 남편 에릭(크리스 메시나 분)도 처음에는 그녀의 프로젝트를 지지하지만, 점차 줄리가 블로그에만 몰입하고 감정 기복을 겪으며 갈등을 겪는다. 이 갈등은 현실적이면서도, 지속 가능한 사랑은 결국 대화와 상호 이해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보여준다.
결국 이 영화는 관계 안에서 자신을 찾는 법, 타인의 응원 속에서 자신을 믿는 법을 함께 그린다.
결말 – ‘줄리아는 나를 몰라요’
영화의 마지막은 다소 씁쓸하면서도 현실적이다. 줄리는 책 출간과 방송 출연까지 성공하지만, 줄리아 차일드가 자신에 대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는 소식을 접한다. 줄리는 실망하지만, 줄리아의 인정을 받는 것보다 중요한 건 자신의 여정을 완주했다는 사실임을 깨닫는다.
이 장면은 ‘멘토링’이라는 것이 반드시 실제의 피드백이나 만남을 전제로 하지 않더라도, 한 사람의 삶이 다른 누군가에게 방향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줄리는 줄리아를 만날 수 없었지만, 그녀 덕분에 삶을 바꿨고, 그것은 진짜 변화로 이어졌다.
8. 결론: 시작하는 용기, 그게 전부다
‘줄리 & 줄리아’는 관객에게 묻는다.
"당신은 오늘 무엇을 시작할 수 있는가?"
거창한 성공이나 완벽한 성취가 아니라, 작은 도전, 작지만 매일 해내는 실천이 인생을 바꾼다. 요리를 할 때마다 실패하고, 눈물 흘리고, 혼란스러워도 계속 요리하고 기록하는 것, 그 자체가 삶을 바꾸는 힘이 된다.
줄리와 줄리아는 각자의 시대에서, 다른 도구로, 같은 본질의 싸움을 했다.
그것은 곧 자기 자신이 되는 일, 그리고 그걸 멈추지 않는 용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