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개봉한 영화 ‘트럼보(Trumbo)’는 1950년대 미국을 뒤흔든 ‘매카시즘’ 시대, 표현의 자유와 창작자의 권리가 어떻게 탄압받았는가를 실화 기반으로 그린 전기 드라마이다. 주인공은 미국 최고의 시나리오 작가 중 한 명이자, 블랙리스트의 상징이 된 달튼 트럼보(Dalton Trumbo). 영화는 그의 가족, 동료들과 함께한 고난의 시간을 조명하며, 결국 가명으로 오스카를 두 번 수상하고 블랙리스트 제도의 모순을 무너뜨린 역사적 승리를 따라간다. 이 작품은 단순한 과거 회고가 아닌, 현대 사회에도 여전히 유효한 표현의 자유에 대한 메시지를 담고 있으며, 브라이언 크랜스턴의 명연기와 조화롭게 전개되는 시대극의 진수를 보여준다.
실화 배경 – 할리우드 블랙리스트란?
‘트럼보’는 영화 속 픽션이 아닌, 실존 인물과 사건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소련과의 냉전 체제에 돌입하며 공산주의에 대한 극도의 혐오와 불안을 사회 전반에 확산시켰다. 이에 따라 1947년 미국 하원 비미국활동위원회(HUAC)는 공산주의 사상 검열을 목적으로 할리우드 인사들을 대상으로 조사를 시작했고, ‘할리우드 10인(Hollywood Ten)’이라 불리는 작가, 감독들이 이에 저항하면서 블랙리스트 제도가 시작된다.
블랙리스트란, 단순한 ‘검열’이 아니다. 이름이 올라간 순간, 할리우드에서 일할 수 없으며, 고용은 물론 사회적 매장까지 당했다. 표현의 자유는 ‘반국가행위’로 몰렸고, 단지 과거에 공산당 활동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창작자의 생계를 박탈하는 전체주의적 조치였다. 달튼 트럼보는 이 리스트의 중심 인물이었고, 그가 어떤 방식으로 이에 맞섰는지가 영화의 중심 축이다.
작가 달튼 트럼보 – 명성과 추락, 그리고 저항
달튼 트럼보는 1940~50년대 헐리우드 최고의 시나리오 작가였다. 대표작으로는 『키티 포일』, 『서부 개척자들』 등이 있으며, 문학성과 대중성을 겸비한 작가로 인정받았다. 그러나 그는 공산당 당원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비미국활동위원회의 청문회에 불려갔고, 헌법상 권리를 내세워 증언을 거부했다.
그 결과 그는 1년 징역형을 선고받고, 출소 후에도 할리우드 전역에서 고용을 거부당한다. 영화는 그의 성공에서 추락, 그리고 저항과 재기의 전 과정을 따라간다. 특히 출소 후 그는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집에 타자기를 설치하고, 밤낮없이 가명으로 시나리오를 작성한다.
그의 집필 작업은 단순한 생계 수단이 아닌, 예술가로서의 생존 투쟁이며 사상과 존엄을 지키기 위한 치열한 저항이었다. 그는 자신이 신념을 지키는 대가로 모든 것을 잃었지만, 펜을 내려놓지 않음으로써 승리를 쟁취했다.
검열에 맞선 펜의 힘 – 가명과 위장 작업
가장 흥미로운 에피소드 중 하나는, 트럼보가 블랙리스트 상태에서도 가명으로 헐리우드 영화계에서 일했다는 사실이다. 그는 수십 편의 영화 대본을 ‘로버트 리치’, ‘사무엘 잭슨’ 같은 가명으로 집필했고, 심지어 이 가명들로 두 번의 아카데미 시나리오상을 수상한다.
- 1953년: 『로마의 휴일(Roman Holiday)』 – 로버트 리치 명의
- 1956년: 『브레이브 원(The Brave One)』 – 가명 수상
이 사실이 알려진 건 훨씬 후의 일이며, 당시에는 진짜 수상자가 누구인지조차 알 수 없었다. 이러한 역설은 창작자의 이름조차 부정당하는 사회의 모순을 극명히 드러낸다. 트럼보는 단지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표현을 통한 정치적 저항, 이름을 숨기고도 진실을 밝히는 싸움을 한 것이다.
예술과 이념 – 표현의 자유란 무엇인가
‘트럼보’는 정치적 메시지를 담고 있지만, 특정 이념을 찬양하거나 정당화하지 않는다. 오히려 표현의 자유와 창작의 권리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과연 작가가 정치적 사상이나 과거 이력 때문에 작품을 쓸 수 없어야 하는가? 국가는 어디까지 표현을 제한할 수 있는가?
이 영화의 미덕은, ‘트럼보’라는 인물의 공산주의적 성향을 옹호하거나 선전하는 데 목적이 있지 않다는 점이다. 오히려 그는 여러 대사에서 "나는 공산주의자지만, 당신이 나를 비판할 권리도 지지한다"는 태도를 보이며, 다양성의 가치와 표현의 권리를 함께 인정한다. 이는 단지 미국 헐리우드의 과거뿐 아니라, 현대 사회에서도 반복되는 표현 탄압, 예술 검열, 정치적 낙인에 대한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당시의 시대상을 생생하게 담고있는 영화로 관객들에게 강한 인상을 주고있습니다. 표현의 자유와 예술의 역할에 대하여 생각해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추천하는 영화입니다.
가족, 동료, 희생 – 인간적인 고통과 연대
트럼보의 투쟁은 개인만의 싸움이 아니다. 그의 아내 클레오(다이앤 레인 분)는 가족의 생계를 함께 책임졌고, 아이들은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했다. 집은 점점 파산 위기에 몰리고, 트럼보는 가족의 부담이 되지 않기 위해 더욱 극단적으로 몰입된 생활을 지속한다.
또한 영화에는 동료 작가, 감독, 배우들이 등장하여 그와 함께하거나, 혹은 그를 외면한 사람들의 다양한 반응을 보여준다. 특히 커크 더글라스가 트럼보에게 ‘스파르타쿠스’의 대본을 정식 명의로 맡기며 블랙리스트 붕괴의 상징적 사건이 되는 장면은, 영화 전체에서 가장 감동적인 순간 중 하나다.
트럼보는 혼자 싸운 것이 아니다. 침묵하지 않은 사람들, 이름을 숨기지 않은 제작자들, 그를 인간으로 존중한 동료들의 연대가 있었기에, 그는 끝까지 싸울 수 있었다.
연출과 배우들의 연기 – 시대극의 몰입도
감독 제이 로치(Jay Roach)는 원래 정치 풍자 코미디 ‘미트 더 푸커’, ‘게임 체인지’ 등으로 유명했지만, 본 작품에서는 진중하면서도 위트 있는 연출로 호평을 받았다. 1950~60년대 미국 사회의 분위기와 당시 헐리우드의 현실을 정밀하게 재현한 점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가장 강렬한 요소는 역시 주인공을 연기한 브라이언 크랜스턴의 연기다. 그는 이 영화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으며, 현실 인물 트럼보의 외형, 말투, 감정을 거의 완벽히 재현했다. 그 외에도 루이 C.K., 존 굿맨, 헬렌 미렌 등 조연진의 연기도 탄탄하여 몰입감을 극대화한다.
결론: 지금도 계속되는 이야기
‘트럼보’는 단순한 과거 회고가 아니라, 표현과 창작, 정치와 권력의 본질적 갈등을 다룬다. 트럼보는 최악의 시절에도 펜을 꺾지 않았고, 이름 없이도 글을 썼으며, 결국은 자신의 이름을 되찾고, 진실을 증명했다.
이 영화는 관객에게 묻는다. – 지금 우리는 무엇을 말할 수 있는가? – 우리는 표현의 자유를 어디까지 지키고 있는가?
트럼보의 투쟁은 끝난 것이 아니다. 오늘날에도 많은 창작자들이 검열, 해고, 압력, SNS 테러 등 다양한 형태로 표현의 자유를 침해당하고 있으며, ‘트럼보’는 여전히 유효한 이야기로 남아 있다.
매카시즘 시대의 할리우드를 배경으로 영화로, 표현의 자유와 예술가의 신념을 지키려는 트럼보의 이야기를 통하여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다. "이 영화는 과거의 이야기를 통하여 현재의 우리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 영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