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하늘을 걷는 남자(The Walk, 2015)’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전기 드라마이자, 시각적으로 가장 경이롭고 철학적으로 가장 아름다운 도전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1974년, 프랑스의 외줄 곡예사 필리프 프티(Philippe Petit)가 뉴욕의 세계무역센터(WTC) 쌍둥이 빌딩 사이를 외줄 하나에 의지해 건넌 사건을 그린 이 영화는, 한 인간이 현실의 한계를 넘어 예술과 자유를 위해 모든 것을 건 순간을 담아냈다.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의 정교한 연출과 조셉 고든 레빗의 몰입도 높은 연기는 이 이야기를 단순한 전기로 남기지 않고, 보편적 감동과 메시지를 담은 ‘현대의 우화’로 완성시켰다.
1. 실화의 힘 – 불가능에 도전한 한 남자
1974년 8월 7일, 뉴욕 맨해튼 중심의 세계무역센터 북타워와 남타워 사이. 높이 400미터가 넘는 고공 외줄 위에서, 아무런 보호장비 없이 한 남자가 걷고 있었다. 그는 ‘도전’이라기보다는, ‘춤’을 추듯 유유히 줄 위를 걸었고, 앉았으며, 심지어는 누워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의 이름은 필리프 프티. 프랑스 출신의 곡예사로, 그는 이 역사적인 ‘하늘 위의 산책’을 통해 한순간 세계의 주목을 받는다.
이 영화는 단지 이 사건을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대신, 그 사건이 가능했던 이유, 한 인간이 그런 상상을 하고, 그것을 현실로 옮길 수 있었던 내면의 여정을 따라간다. 영화는 프티가 어린 시절부터 줄타기에 빠지게 된 계기, 거리 예술가로서의 방황, 스승 루디와의 만남, 팀을 꾸리는 과정, 뉴욕으로의 여정, 철저한 계획과 실행, 그리고 결정적인 ‘그 날’까지의 과정을 서사적으로 흡인력 있게 풀어낸다.
2. 영화적 구성 – 플래시백과 1인칭 내레이션의 효과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은 이 영화에서 1인칭 서술 방식을 채택한다. 필리프 프티가 자유의 여신상 앞에 서서 관객을 향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식이다. 이는 단순한 회상이 아니라, 관객과 정서적으로 교감하는 장치로 기능하며, 필리프의 생각, 감정, 동기를 더욱 직접적으로 전달한다.
또한 영화는 시간 순서에 따라 사건을 직선적으로 전개하지 않는다. 중요한 순간은 미리 암시되거나, 사건의 결과를 보여준 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기도 한다. 이러한 플래시백 기법은 서사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고, 관객이 ‘결말을 알면서도 긴장하게 만드는’ 미학적 장점을 제공한다.
특히 영화 후반부, 실제 줄타기 장면에 이르기까지의 빌딩 내부 진입, 줄 연결, 경찰 회피 등은 거의 하이스트 무비(도둑 영화)에 버금가는 스릴과 속도감을 선사한다. ‘도전’이라는 테마를 스펙터클한 장르 안에 녹여내면서도, 그 본질적 의미를 흐리지 않는 것이 이 영화의 강점이다.
영화의 하이라이트인 고공 줄타기 장면은 IMAX 3D로 제작되어 관객들에게 실제로 고소공포를 느끼게 할 정도로 생생하게 구현되었다. 고소공포증이 있는 관객은 실제로 현기증을 느꼈다고 한다.
3. 고소공포 vs 예술 – 죽음을 무릅쓴 예술의 철학
‘하늘을 걷는 남자’의 중심은 단연 ‘그날의 외줄 걷기’다. 아무런 안전장치 없이, 412미터 높이의 두 빌딩 사이, 바람이 몰아치는 새벽. 이 장면은 영화적 연출, 시각효과, 배우의 연기까지 모든 면에서 정점이라 할 수 있다.
관객의 다리마저 후들거리게 만드는 이 장면은, 단지 시각적 공포만을 담지 않는다. 카메라는 프티의 시선과 호흡, 발의 움직임, 줄 위에서의 무게 중심까지 집요하게 따라가며, 그 공간이 예술이 탄생하는 무대임을 설득력 있게 그려낸다.
프티는 말한다. “죽을 수 있다는 공포보다, 줄 위에서 자유롭게 걷지 못할까 두려웠다.” 이 말은 그가 단지 스턴트를 한 것이 아니라, 삶의 방식 자체를 예술로 삼았다는 선언이다. 죽음을 무릅쓴 자유는 단지 무모함이 아니다. 그것은 ‘삶이 예술이 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전인적 실천이자 응답이다.
4. 꿈, 공동체, 실행 – 프티와 그의 ‘공범들’
프티는 이 불가능한 도전을 혼자서 해낸 것이 아니다. 영화는 그의 주변 인물, 즉 ‘공범’들의 이야기도 놓치지 않는다. 사진가 친구, 건축가 출신의 동료, 프티를 사랑했던 애니, 미국 현지에서 합류한 헬프들까지. 모두가 각자의 방식으로 위험을 감수하며 프티의 계획에 동참한다.
이들이 이 계획을 돕는 이유는 단지 우정 때문만이 아니다. 그들은 프티가 가진 ‘순수한 꿈’과 ‘예술적 광기’에 매료되었고, 그를 통해 자신들의 삶도 조금은 특별해질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하늘을 걷는 남자’는 공동체적 의미도 담고 있다. 진정한 꿈은 혼자 꾸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의 마음을 움직이고 함께 만들 수 있는 비전임을 말한다.
특히 프티와 애니의 관계는 이 영화에서 중요한 감정선이다. 애니는 프티의 꿈을 이해하고 지지하지만, 동시에 ‘그의 세계에 들어갈 수 없는 거리감’을 느낀다. 이는 ‘예술가와 현실’, ‘꿈과 사랑’ 사이의 갈등을 은유하는 구조다. 결국 프티는 애니를 남기고, 혼자 줄 위로 오른다. 이는 그의 선택이 완전한 자유이자 고독의 길임을 보여준다.
5. 세계무역센터 – 실화와 상징의 겹겹
영화 속의 두 빌딩, 즉 뉴욕의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WTC)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다. 이 건물은 이후 2001년 9.11 테러로 무너졌고, 그 자체로 미국의 상처와 기억이기도 하다. 영화는 이 건물이 완공 직후, 인간의 꿈과 도전의 상징이었음을 환기시킨다.
프티가 줄타기를 감행했던 1974년은 WTC가 세워진 지 채 몇 년도 되지 않았던 때다. 그에게 이 건물은 거대한 타워이자 ‘가장 아름다운 외줄 무대’였다. 영화 후반부, 경찰이 프티에게 벌금을 물리고 나서, “이제 이 건물은 너의 것이다”라고 말하는 장면은 단순한 농담을 넘어, 기억의 소유권에 대한 상징이다.
실제로 프티는 회고록에서 “쌍둥이 빌딩은 나에게 삶의 일부였다”고 말한 바 있다. 영화도 이 감정을 고스란히 담아낸다. WTC는 영화 내에서, 단지 배경이 아니라, 프티의 예술을 통해 살아 있는 존재처럼 묘사된다. 이는 9.11 이후의 관객에게 깊은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6. 시각효과와 연출의 진화 – 현대 영화 기술의 총합
‘하늘을 걷는 남자’는 IMAX 3D 기술을 활용한 대표적인 영화 중 하나다. 줄 위에 서 있는 프티의 시점을 그대로 체험할 수 있도록 제작된 고공 장면은 실제로 관객에게 현기증과 가슴 떨림을 유발한다. 이 장면을 위해 제작진은 뉴욕 시가지의 가상 렌더링, 모션 캡처, 그리고 CG를 결합한 하이브리드 기술을 동원했다.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은 ‘백 투 더 퓨처’, ‘포레스트 검프’, ‘캐스트 어웨이’ 등으로 유명한 스토리텔링 거장이자, 영화 기술 실험의 선구자다. 이 작품에서도 그는 인간적인 감정선과 기술적 진보를 완벽하게 결합해낸다. 특히 프티가 줄을 밟는 순간의 발의 떨림, 바람의 강도, 새의 날갯짓까지도 세밀하게 구현되며, 영화는 미학과 몰입, 기술과 예술의 만남으로 완성된다.
7. 조셉 고든 레빗 – 예술가를 연기한 예술가
이 영화의 성공은 주연 배우 조셉 고든 레빗의 헌신적 연기 없이는 설명할 수 없다. 그는 프랑스 억양을 완벽히 소화했을 뿐 아니라, 실제 줄타기 기술을 익히기 위해 8일간 집중 훈련을 받았다. 프티 본인이 직접 그를 코치했으며, 영화 속 대부분의 줄타기 장면은 실제 연기자가 연기한 것이다.
고든 레빗은 단지 동작을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는 프티의 광기, 천진함, 고집, 그리고 시적 감수성까지도 담아낸다. 특히 외줄 위에서의 미세한 감정 변화는 감탄을 자아낸다. 카메라가 그의 얼굴을 클로즈업할 때, 그는 ‘죽음을 마주한 자’가 아니라, ‘삶을 사랑하는 자’로 보인다. 그 점이 이 영화의 미학이다.
8. 결론: 우리는 모두 자기만의 외줄을 걷는다
‘하늘을 걷는 남자’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지만, 단순한 전기 영화가 아니다. 이 영화는 누구나 인생에서 한 번쯤은 자기만의 외줄 위에 서게 된다는 철학적 은유로 작용한다. 안전하지 않지만 꼭 가야만 하는 길, 실패와 죽음의 공포를 무릅쓰고 내딛는 한 걸음. 프티의 이야기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그는 줄 위에서 말한다. “지금 이 순간, 나는 가장 살아 있는 존재다.” 그 외침은 모든 이에게 전해진다. 진정한 자유는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꿈을 현실로 옮기는 순간, 그 가장 외로운 곳에서 마주하게 되는 감정이다.